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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and dramas

영화 봉오동 전투 출연진 평점 정보

by Edmund 2023. 2. 27.

 

포효하여 승리하는 1920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제작된 원신윤 감독의 2019년 한국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일본의 강압에 스러져 간 사람들의 아픔을 전하는 등 장르와 다양한 서사를 통해 일본군 기지를 대담하게 공격하는 한국 저항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봉오동 전투

 

 

 

개봉 : 2019.08.07.
평점 : ★9.07
관객수 : 478만 명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액션, 드라마
국가 : 대한민국
러닝타임 : 135분
배급 : ㈜쇼박스

 

 

 

 

 

 

1. 소개

 

 

1919년 3·1 운동 이후 봉고동에서는 독립군의 무력시위가 활발해졌다. 

일본은 신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중심으로 독립군 타도 작전을 개시하고, 독립군은 봉오동 지형을 활용해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기로 했다. 

항일 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검객 해철(유해진)과 장하(류준열), 해철의 오른팔이자 날렵한 저격수 병구(조우진)는 쏟아지는 총알과 포위망을 뚫고 일본군을 죽음의 계곡으로 끌어들인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 불가능한 전략을 구사하는 독립군의 활약에 일본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1920년 6월,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독립군의 승리인 봉고동 죽음의 골짜기에 묻힌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2. 등장인물 및 출연진

 

 

봉오동 전투(1)

 

 

1) 유해진 - 황해철 역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칼솜씨가 있다.

 

2) 류준열 - 이장하 역

 

발 빠른 독립군 1 분대장이다.


3) 조우진 - 마병구 역

 

해철의 오른팔이자 날쌘 저격수이다.

 

 

 

 

 

 

 

 

3. 줄거리 및 결말

 

 

봉오동 전투(2)

 

 

일본군은 봉오동 계곡 깊숙한 곳으로 진입하기 시작했고, 국권을 빼앗기기 직전에 한민족은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가진 일본에 대항하여 의병을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어제의 농민들은 오늘날의 용사가 되어 일본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당시 만주 전역에는 여러 독립군 부대가 조직되어 있었다.

 

 

봉오동 전투(7)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일본과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

그때 우리 독립군은 일본군에게 아수라장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 비정규군들이 계속 강을 건너 일본 관청을 파괴하고 있으니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일본군은 강 건너 만주로 쳐들어가 여러 자루의 칼을 뽑아 들었다.

 

 

봉오동 전투(11)



그러나 일본군은 우리의 신속한 독립군을 놓쳤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기 위해 근처의 "삼둔자"라는 한인 마을을 공격했다.


힘없는 아이들, 노인들, 여성들, 그리고 심지어 임산부들도 있었다.

 

봉오동 전투(10)

 

이때 우리 독립군이 나타나서 일본군을 단번에 소탕했으니, 이것이 바로 봉오동 전투의 전초전이 된 삼합전이다.

 

복수하러 갔다가 얻어맞은 일본군은 완전히 눈을 뒤집었다.

그래서 강 건너 독립군을 추격하는 특수부대인 '월강추격대'를 만들어 독립군이 주둔하고 있는 봉고동으로 밀고 들어갔다


우리 독립군의 정보망은 이미 월강 추격전의 진격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봉오동 전투(4)

 

봉고동 주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뒤 봉고동 계곡의 각 요소를 매복시켰다.


당시 홍범도 장군은 분대장 이화일(이장하)에게 일부 병력을 주고 일본군을 봉오동 계곡 깊숙이 유인하는 임무를 맡겼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화일 부대는 지는 척, 밀리는 척, 약한 척 제대로 싸워 끌어들여야 한다.

 

 

봉오동 전투(13)

 


너무 잘 싸우는 것이 문제라면, 그것은 문제였다. 그래서 월강추격대의 선봉부대를 섬멸한 것이다.


이때 일본군의 후방 부대가 겁을 먹고 재편성을 했더라면 봉고동에서 역사에 남을 전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았고, 후방 부대는 중무장을 하고 대규모로 행군해 왔다.

 

 

봉오동 전투(9)

 


이번에는 이화일 분대의 침착한 유인 작전으로 일본군은 점차 봉오동 계곡 깊숙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차분히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한독립군은 매복이 있는지 왜 간첩이 찾아와도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아무도 총을 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적을 완전히 포위망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봉오동 전투(8)



홍범도 장군의 선제 사격의 신호탄으로 독립군의 집중 포화가 쏟아지고 월강추격대는 단풍처럼 쓰러질 것이다.


일본군은 3시간의 저항 끝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후퇴했다.


그때는 하늘도 우리 편이었다. 급격한 기상 악화로 봉오동 계곡은 폭우와 안개로 뒤덮여 있다.

 

 

봉오동 전투(5)

 


피아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일본군은 퇴각하면서 서로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봉고동에서 벌어진 숨 막히는 전투로 군인 157명, 부상자 300명 등 총 45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한국군 사상자는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4. 평가 

 

 

봉오동 전투(14)
 

잘 표현된 전투 장면들로 추격의 절박함이 드러났다고 한다.

 

특히 일본 저격수와의 추격전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긴박감의 절정일 것이다.

 

또한 한국 영화의 비교적 대규모 전투 장면이 이어지고 있으며, CG와 특수효과도 잘 표현되어 있다.

 

중후반 이후 전투장면이 계속 긴장돼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엔딩 부분의 극적인 전개도 호평을 받고 있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뛰어났으며, 영화의 전체적인 비주얼이 잘 표현되었다.

 
 
 
 

 

 

5. 흥행 

 

 

관객수 손익분기점은 500만 명으로 한국 영화 중에서도 높은 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관객이 400만을 돌파시 수많은 기사들에 따르면 손익분기점은 450만이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450만을 넘기면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